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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 안락

by 매생이 전복죽 2016. 8. 29.

*앤오님 드린 회지의 자캐커플 연성입니다

*센티넬버스 AU

*이틀만에 써내려갔기 때문에 퇴고/맞춤법검사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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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너 때문에 이번 작전에서 얼마나 손해가 컸는지 알아?”

 

. 서류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제 책상 위를 가격했다. 모서리에 찍혀 움푹 들어간 책상을 보면서도 소년은 덤덤히 제 상사를 올려다봤다. 후우, 한숨소리가 나더니 이어 들어갔던 책상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본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마치 구겼던 종이를 펼치는 것과 비슷한 모습.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강력한 염력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도 소년의 얼굴에는 표정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리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게 전부.

 

네가 능력을 사용했더라면 부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요?”

 

날카롭게 쏘아붙이거나 저항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소년의 목소리는 제 표정과 마찬가지로 덤덤했다. 소년의 말에는 순전한 의문만이 담겨있었다. 부상자가 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투로. 소년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공감능력의 결여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에게 있어선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철저한 타인. 제가 그들을 위해 굳이 나서서 능력을 사용할 필요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센티넬이라는 자각은 있나? 국가에서 우리 같은 돌연변이들을 거둬주고...”

 

없습니다. 라는 대답이 머릿속에서 떠올랐지만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상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그의 속을 긁을 필요는 없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상대와의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었으니. 만약 제 능력이 다른 것이었더라면 이런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아서 사용을 했겠지만,

 

네 트라우마를 일일이 신경써줄 정도로 여기가 만만한 곳인 줄 알아? 네가 특이체질이라고 건방지게 굴지 마.”

 

빤히 그를 올려다보던 소년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제 약점이 대놓고 드러나는 게 상당히 불쾌한 모양이다. 초조함도 함께. 포식자 앞에서 목을 드러내놓은 느낌이었다. 언제든지 물어 뜯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감정.

 

이만 돌아가 봐. 위에서 네 처분이 결정 될 거다. 그동안 근신하면서 반성이나 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은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그의 상관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이세이, 열여덟, S급 물 능력자 센티넬이자...가이드. 원래라면 폐기처분 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를 병력에서 제외하기엔 손실이 너무 크다. 하지만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는 센티넬을 살려 둬봤자 쓸모없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과연, 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숙소로 돌아온 이세이는 침대에 풀썩 눕고는 늘어졌다. 아까의 큰 소리 때문에 귀가 여전히 울려서 머리가 지끈거린다. 원래대로라면 가이드와 한 방을 써야하지만 그에게는 가이드가 필요 없었다. 센티넬이자 가이드, 아주 희귀한 경우로 능력이 폭주할 일도 없고,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다고 해도 상해를 입을 확률도 극히 드물다.

 

사라지려나...”

 

중얼거리며 뒹굴, 몸을 뒤집어 엎드린다. 자신이 중요 병력이라는 확신은 어느 정도 있었기에 이번 임무에서 가만히 있었지만, 무턱대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관계자들 앞에서 억지로라도 능력을 사용해 아직 쓸모 있음을 입증해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되는 것만큼은 피해야한다. 일반적으로는 쓸모가 없어진 센티넬들은 은퇴를 시켜주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정부에게 반감을 품은 이들은 임무에서 종종 실종되곤 했다. 그걸 단순한 실종이라고 덥석 믿을 정도로 소년은 멍청하지 않았다. 무조건 살아야한다. 끝까지.

 

 

 

그로부터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자고 있던 도중에 전화벨이 울리자 눈을 번쩍 뜨고는 느릿하게 걸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상관의 말에 차분하게 대답하던 그의 눈이 조금 크게 뜨인다.

 

“...?”

 

너로썬 좋은 소식이 아닌가. 네 체질에 감사하도록. 내일부터 다시 나오면 된다.”

 

하지만 가이드라니...”

 

그거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잖나.”

 

꾸욱, 입술을 깨물었다. 가이드로 살게 된다면 억지로 능력을 사용할 필요도 없고, 익사하는 꿈을 꾸는 밤도 줄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신 제 공간에 타인을 집어넣고, 그를 위해 능력을 사용하고, 신체적인 접촉을 해야 한다. 어차피 타인인데. 중요하지도 않을 사람을 위해 싫은 일을 하라니.

 

그럼, 이만.”

 

전화가 끊기자 길고 긴 한숨이 뒤따라온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해야하는 걸까. 그저 무기력하게 다시 침대에 누웠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새로운 센티넬과 매칭이 되면 이 공간마저도 침범당하겠지. 마찬가지로 그것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02

 

 

 

 

, 저기. 네 가이드 왔네.”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세이의 귀에 들린 소리였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의 상관이 어쩐 일인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미심쩍게 다가간 그는, 상관 옆에 앉아있는, 어딘가 위축된 모습의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게 전부였다. 제게 위해를 가할 것 같지도 않았으니, 굳이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새길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쪽은 이세이고, 이쪽은 신 화. 동갑이니까 친해지기도 쉽겠지, . 오늘부터 네 방에도 사람이 들어오니까, 안 치워뒀으면...어쩔 수 없고.”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이는 그저 멀뚱히 남자를 쳐다보고는 말았다. 옆의 소년이 눈을 끔뻑거리며 저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저 무시하곤 만다. 어차피 별로 중요한 사람도 아니다. 흘끗, 시선만 옆으로 돌려 소년을 바라보자 황급히 눈을 내리는 것이 보인다. 다행이 시끄러운 타입도 아닌 듯 하고. 적당히, 적당히만 지내면 괜찮겠지.

 

이게 방 열쇠고, 앞으로 쟤랑 같이 지내면 돼. 여기 전부 서명하고.”

 

신 화라고 불린 소년이 열쇠를 받아들고 수북한 서류에 서명하는 동안 상관이 세이에게 손짓을 했다. 세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 멀리가지 않고, 비어있는 회의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당연한 조치였다. 센티넬 중엔 그처럼 청력이 민감한 이들이 많았으니.

 

보통 이렇게 갑작스럽게 매칭하는 일도 드문데 말이야. , 이번엔 제대로 일해야 한다. 적당히, 제대로.”

 

적당히. 그 말은 제게나 어울리는 말이지 그의 입에서 나올 법한 단어는 아니었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자 상관이 아무도 없는 주위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근신도 풀렸으니 제대로 일은 해야지. 근데, 혹시라도 각인은 하지 마. 보통은 각인을 장려하지만 너희는 기관에서 임시 각인으로 이어줄 거야.”

 

임시각인...?”

 

각인을 맺으면 너는 쟤의 정식 가이드가 되는 거잖아. 완전히 묶여버린다고. 위에서는 눈치 좀 보다가 널 다시 센티넬로 넣으려고 해.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상관이 서류 한 장을 집어 들며 평소처럼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는 관심 없겠지만...”

 

 

 

앞서서 소년이 걷는 대로 화는 그를 따라 걸었다. 세이...이세이라고 했던가. 앞으로 자신의 가이드가 될 사람. 자신에게 불만이라도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결국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만보단, 무관심일까. 숙소로 이동하는 내내 잘 따라오는지 확인용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니. 결국 세이가 화를 돌아본 것은 제가 지내는 곳의 문 앞, 607호에 도달했을 때였다. 이 복도식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센티넬과 가이드로, 이 뒤로도 아파트 몇 채가 더 있었다. 철컥, 은색 열쇠를 열쇠구멍에 넣고 돌린다. 요즘 시대에 무슨 열쇠를 사용하나 싶지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정부관계자라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도록. 화가 들어오자 세이가 문을 잠갔다.

방의 내부는 깔끔했다. 아주, 깔끔했다. 도저히 이 곳에서 오 년 이상을 산 곳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당장 내일 이사를 가기 위해 정리를 끝낸 것이라고 하면 차라리 신빙성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살던 곳이라는 흔적 자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네 침대는 저쪽. 옷장도 저쪽에 있고.”

 

“...네에...”

 

화가 짐을 푸는 동안 세이는 눈길도 주지 않고 제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휴대전화로 게임을 했다. 훈련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고, , 제가 도와줄 의무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니. 잠시 로딩 중에 그를 보고는 다시 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어디, 시작 해볼까?”

 

새하얀 방.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나온다. 화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지며 순식간에 방은 도시의 일부로 변해버린다. 적응이 되지 않아 느릿하게 주변을 살피는 신 화 앞에 커다란 건물이 나타난다. 스피커에서 음성이 마저 흘러나온다. 능력을 사용해서 저걸 부숴. 세이는 상관과 함께 스피커로 음성이 전달되는 작은 부스 안에 들어가 있었다. 팔짱을 끼고 그저 구석에서 소년을 응시할 뿐. 이름이 뭐랬더라, 어쨌든 퍽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세이는 생각했다. 건물을 보며 머뭇머뭇 주저하는 것이 전부라니. 센티넬이 아닌, 일반인 같았다.

 

최근 발현된 거죠?”

 

, 뭐 그렇지.”

 

소년은 아직도 건물을 공격할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초보자가 그러는 건 꽤 흔하게 있는 일이긴 했지만. 상관이 익숙하게 레버를 내리는 것을 본 세이는 무덤덤하게 유리창 너머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홀로그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차를 타고 달리는 것처럼 저 멀리 있던 건물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화가 움찔하며 눈만 느릿하게 감았다 뜨더니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건물은 더 앞으로 다가왔다. 소년이 더욱 뒤로 물러난다. 방 중앙에서 시작해서 투욱, 뒤에 있는 벽에 가로막힐 때까지.

 

, 싫어요...!”

 

바닥이 덜덜 떨리더니 돌조각들이 떠오른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더니 점점 크기가 커져 커다란 바위덩어리까지. 커다란 돌덩어리들이 한 곳에 뭉쳐, 굉음을 내며 건물의 정 중앙을 부순다. 소년이 벽에 몸을 기대어 숨을 몰아쉬더니 주르륵 미끄러져내려 주저앉는다.

 

가봐.”

 

어깨에 닿는 손에 세이는 팔을 움직여 손을 쳐내었다. 하지만 별 다른 반응은 하지 않고 부스를 나와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자신을 방어하듯 팔로 제 몸을 꼭 끌어안은 소년이 눈에 들어온다. 달달 떨리는 몸. 아직 흥분이 덜 가셨는지 바닥의 돌조각들도 따라서 떨린다. 세이가 가까이 갈수록 바닥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든다. 가이드가 반경에 들어왔기 때문이겠지. 가만히 소년을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화가 무릎에 파묻은 고개를 살짝 들고 그를 올려다본다. 머뭇거리며 저도 팔을 뻗는다. 손이 닿고, 손가락이 얽혔다. 순식간에 바닥의 떨림이 잦아든다. 덩달아 몸의 떨림도. 극도로 민감해진 감각들이 잦아들자 화가 무릎에 파묻었던 고개를 완전히 들었다. 매캐한 먼지의 냄새 때문에 머리가 핑핑 돌았는데, 그마저도 가라앉았다는 게 신기했다. 완전히 떨림이 잦아들자, 세이가 손을 떼어내고 다시 부스로 돌아가려 몸을 돌렸다.

 

“...그으, 세이...”

 

이름이 불렸다.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세이에게는 퍽 생소했다. 주로 제가 불리는 호칭은 ’, 혹은 ’, 아니면 제 능력인 ’. 왜 부르느냐는 듯 그가 뒤를 돌아봤다. 입은 여전히 일자로 아무런 단서를 주지 않았지만 눈에는 의아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 마워요.”

 

“....”

 

예상치 못한 말에 세이는 멀뚱하게 눈을 깜빡였다. 이내 다시 몸을 돌려 부스로 돌아갔지만. 의무적으로, 원치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인데. 굳이 감사인사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부스에 들어가서도 감사인사를 곱씹어보다가 털어내었다. 어차피 그게 제 일인데, 고마워하다니, 멍청하긴.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유리 너머의 소년에게로 눈을 돌렸다.

 

 

 

제 방인데도 세이는 방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작게 열린 문틈으로 들리는 훌쩍이는 소리에 가만히 제 손가락으로 팔만 두드렸다. 신경 쓰지 않는다.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쉽사리 문을 열고 들어가질 못했다. 세이는 한참을 지나 소리가 잦아들 때 즈음에서야 문을 마저 열고 들어갔다. 이미 해는 저물었고, 화가 불을 켜지 않았는지 안은 캄캄했다. 더듬거리며 불을 켜고 방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앉아 소매로 제 눈을 쓱쓱 닦는 소년이 보였다. 무시하자. 못 본 척.

 

저어...세이...”

 

아직 물기가 어린 목소리가 저를 부르자 물끄러미 그를 쳐다봤다. 한참을 주저하는 모습을 얼떨떨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위로라도 해줘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디, 해본 적이 있어야지.

 

...죄송한데...그으...”

 

. 왜 그래?”

 

“......잡아주시면...안될까요...?”

 

싫으시면 안 그래도 괜찮아요. 우물쭈물, 작은 목소리가 덧붙는다. 멍하니 눈만 깜빡이던 세이는 화의 옆에 앉아 손을 잡았다. 손이 잡히자 화의 감각이 진정된다. 운 직후라서 감정적으로 흥분 된 상태라, 이럴 땐 감각이 극도로 민감해지곤 했다. 세이의 체향이 타인들보다 옅어서 알아채는 데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가 문 밖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감각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세이는 그저 멍청하니 손만 잡고 있었다. 갑자기 감각 통제가 되지 않은 걸까? 어쩌면 오늘 한 훈련이 너무 강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필요하면 그냥 말해. 어차피 일이니까.”

 

쟤가 원래 겁이 많더라고. 능력 사용하는 거에 너처럼 트라우마는 없어도 거부감도 있고.’ 문득 상관이 저를 불러 덧붙인 말이 떠올랐다. 화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세이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다.

 

 

 

 

03

 

 

 

 

 

우욱...!”

 

강렬한 음식의 냄새가 머리를 가격한다. 남들이 맡으면 평범한 음식의 냄새지만 화에게는 그 모든 것이 코에 쑤셔 넣어진 것 같이 끔찍했다. 특히나 매운 향신료의 향 때문에 눈에 자동적으로 눈물이 고였다. 신 화가 헛구역질을 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아프고 모든 감각이 마비된 느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침 그 주변을 정찰하던 이들의 눈에 소년이 들어왔다.

 

쟤 가이드 어디 있어?!”

 

옷에 뭐라고 써있냐? ...?”

 

어서 무전이나 쳐!”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멀리서 이세이가 호출을 받고 걸어왔다. 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소년을 보고서는 조금은 그 걸음이 빨라졌지만 결코 뛰지는 않았다. 다만 감정이라는 것이 잘 드러나지 않던 소년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조금 번졌다.

 

얘 왜 이래요?”

 

미친놈아, 네가 가이드잖아! 같이 안 붙어 있고 뭐했어?”

 

화가 한 손으론 코와 입을, 다른 손으로는 명치부근을 움켜쥐고 있어서 세이는 머뭇거리다가 옷 너머로 드러난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소년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옆에 앉아서 손을 떼지 않았다.

 

같이 안 붙어있으면 이래요?”

 

? 이 새끼 뭐야?”

 

, , 얘 그거잖아, 센티넬인데 가이드.”

 

그 중 한명이 세이의 옷에 붙어있는 뱃지를 가리켰다. 여전히 당황스러운지 눈만 깜빡거리며 올려다보는 그에게 비난하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언제 감각이 극대화 될지 모르는데 떨어져있냐? 네가 고참이면, 씨발. 저거 존나 아프다고. 남들 다 너처럼 안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 말란 말이야!”

 

꽤 흥분 했는지 그의 뒤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세이는 얼떨떨한 정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 중에 센티넬들이 능력을 사용하고 나서 괴로워하는 모습은 종종 보았지만, 평소에도 이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주저앉은 소년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접촉하고 있을 수밖에. 이제 좀 정신이 드는지 소년이 천천히 몸을 들어올렸다.

 

“..., 괜찮아?”

 

끄덕끄덕, 말할 기운조차 없는지 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이가 다른 손으로 그의 손을 쥐었다. 안정된 감각에 턱 막혔던 숨이 내쉬어진다.

 

너희, 각인 안 했지?”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투로 세이가 고개를 든다. 경계가 가득 서려있는 표정. 아차, 아직 어린애들이지. 그걸 깨닫고 진정하라는 듯 물어본 이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저기, 그런 의미는 아니고. 안 했으면 앞으로도 더 가까이 붙어있으라고. 네 센티넬이 폭주하는 꼴은 보고 싶진 않잖아?”

 

세이가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센티넬의 폭주는 그의 은퇴로 이어졌다. 좋은 일로 착각하면 곤란한 것이, 폭주하는 센티넬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센티넬들은 폭주를 제압당하는 도중에 사망에 이르렀다. 죽거나 말거나, 저와 큰 상관은 없었지만 여기서 또 무슨 일이 발생했다간 저만 손해이며,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는 취향 또한 없었다. 정찰병이 지나가고 조금 뒤에야 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불안한지 시선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

 

.....”

 

뭐 때문에 그런 거야?”

 

그으...냄새가...”

 

냄새? 그렇다면 후각이 발달한 경우인 것일까. 주변을 훑어보던 세이는 그들이 서있는 건물이 식당의 조리실 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필이면 여기서 불안정해지다니. 화를 일으켜 세운 세이에게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아무리 신경 쓰지 않는다곤 해도 결국 제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니.

 

“...미안.”

 

계속 세이의 눈치를 보고 있던 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민폐를 끼쳤으니 당장이라도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눅이 들어 움츠렸던 몸이 살짝 풀어진다. 눈에 입술을 꾹 물고 있는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프지 않으려나. 손가락을 뻗어서 톡, 건드린다. 소년의 눈이 조금 커지면서 입술을 물고 있는 이를 뗀다. 피가 몰려 붉어졌던 입술에서 순식간에 혈색이 사라진다.

 

전 괜, 찮으니까요...네에...”

 

갑작스런 접촉에 멍하니 눈만 깜빡이면서도 들려오는 말에 의문만이 떠오른다. 안 괜찮으면서. 어째서 괜찮다고 하는 거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의아함만이 가득 차오른다. 의식하지 못한 상태지만, 이세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이미 신 화는 그의 반경 안에 들어와 있었다.

 

 

 

고된 훈련의 연속. 화가 이곳에 도착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보통 이쯤 되면 제 능력에 적응하고 자리를 잡을 텐데 화는 아직도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다. 한계까지 몰아 붙여져야 본능적으로 능력을 끌어내었으며, 그 이후론 숨을 몰아쉬며 어딘가에 숨기 바빴다. 그 사건 이후 외출을 하면 항상 세이와 함께 다녔지만, 급격한 감각의 변화에도 적응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센티넬과 가이드로써의 관계도 아직 소원하긴 마찬가지였다. 둘 사이에는 별로 대화가 오가지도 않았고, 가끔가다 감각의 안정화를 위해 살을 맞대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날도 게임을 하고 있는 세이 옆에 화가 앉아서 책을 읽었다. 손을 잡기엔 불편하니 팔부터 어깨까지를 붙이고 서로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아주 일상적인 모습. 화를 향해 눈을 살짝 돌린 세이의 눈을 잡아끈 것이 있었다.

 

멍 자국?’

 

항상 긴팔을 입고 있어서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티셔츠의 목둘레 아래로 살짝 드러난 어깨부근에 상당히 큰 멍이 보였다. 훈련 중에 생겼다고 보기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은 제가 제일 잘 알았다. 모든 훈련엔 세이가 함께였으니.

 

, 그거 뭐야?”

 

갑작스런 말소리에 화가 천천히 그와 시선을 맞추고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세이가 턱짓으로 멍을 가리키자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더니 손으로 옷깃을 끌어당겨 그것을 가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 아무 것도 아니라니.”

 

신경, 안 쓰셔도...”

 

화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세이가 손을 뻗어 티셔츠의 목 자락을 휙 끌어내렸다. 뭐라 말리기도 전에 순식간에 한 쪽 어깨가 드러났다. 커다란 멍이 여러 개. 흉터도 함께. 아마 이 밑으로도 더 있겠지. 멍하니 그걸 쳐다보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무어라 항변하려던 화의 입에서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다.

 

왜 말 안했어?”

 

“...”

 

내 일이 너랑 접촉하는 거라는 건 알고 있어?”

 

화의 눈이 불안하게 움직인다. 실수 한 걸까. 대답대신 간신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내가 건드렸으면 어쩌려고 말 안 한 거야? 현장 나가면 안 그래도 긴장할 텐데 거기서 아픈 곳 건드렸다가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어쩌려고.”

 

여태까지 그가 이렇게 길게 말 한 적이 있었나. 제가 아닌 그 누구와도 이리 오래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무덤덤한 목소리는 그대로였지만 어딘가 화나 보이는 모습에 눈만 끔뻑인다.

 

그래서, 누구야?”

 

“...?”

 

내일 보고할 거니까. 상관인가? 이름...아니면 외형이라도 말해봐.”

 

화의 눈이 이리저리로 데구르르 굴러간다. 아무래도 그는 이곳에 와서 생긴 상처라고 오해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 게 아니라요... 작게 소리를 내었지만 도통 듣지를 않아서 그저 제 옷의 소매만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화가 입을 열었다.

 

그으...여기서, 그런 게 아니라...”

 

집요하게 눈을 떼지 않는 이세이의 시선을 피해서 입을 우물거리다가 가까스로 말을 꺼낸다. 꺼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에, 두려움에, 바닥이 작게 진동한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나가서 신고라도 할 기세인 세이 때문에 말을 안 하고 버틸 수도 없을 노릇이었다.

 

“......버지가...”

 

?”

 

세이가 눈에 띄게 뻣뻣하게 굳었다. 그의 말에 사고가 그대로 정지한 듯 했다. 안 그래도 크게 뜬 눈이 휘둥그레진다. 띄엄띄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대충 설명하는 화의 말을 그저 멍하니 듣는다. 어쩐지 저와 그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종종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제 유년기가 그와 겹쳐 보인다. 깜빡깜빡, 눈꺼풀로 제 앞에 드리운 잔상을 치워내고는 그가 말을 끝낼 때까지 옆에 제대로 앉아 손을 쥐었다. 바닥의 진동이 멎는다. 그리고는 그 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처음으로 두 사람이 긴 대화를 나눈 날이었다. 그동안 닫고 있던 문이 끼이익, 녹슨 소리를 내며 열렸다. 소년들은 처음으로 상대를 자신의 세상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

 

 

 

 

04

 

 

 

 

 

날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전의 소원했던 사이보다 발전해 나갔다. 마침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사이까지. 두 사람의 인생에서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직도 화가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전보다 능력을 발현하는 속도는 빨라졌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화의 능력이 처음에 보여주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 드러났고, 두 사람은 더 가까워졌으며, 그가 임무에 투입 될 날도 멀지 않게 되었다.

 

가이드!”

 

부스에서 나온 세이가 주저앉아있는 화에게 달려갔다. 땅이 덜덜 떨리고 옆에 돌조각이 떠다니는 것은 개의치도 않고선 그의 곁으로.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다. 깍지를 끼고 이마를 맞댄다. 여전히 바닥의 떨림은 줄어들지 않는다.

 

화야, 진정해.”

 

“...세이..., 이거, 싫어요...”

 

고개를 저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화가 속삭인다. 얼굴을 무릎에 묻고 있어서 그의 눈이 보이지도 않는다. 공중으로 떠오르던 돌의 파편들의 크기가 점점 커졌다. 세이의 눈에 걱정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센티넬이 능력을 사용하고 흥분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은 배워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는 금방 진정하곤 했고, 이렇게 오래 불안정한 상태에 머무른 것은 꽤 드문 일이었다.

 

나도 알아. 화야, 여기 봐. 잠시만.”

 

여전히 화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세이가 잡고 있던 한쪽 손을 떼서 부드럽게 화의 머리를 쓸었다. 그제서야 빼꼼, 고개를 든 화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 ?”

 

세이가 고개를 숙이고 간신히 드러난 화의 눈 밑에 입을 맞췄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닿을 때마다 툭, 투둑, 돌덩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바닥의 진동마저 잠잠해진다. 입을 맞춘 적은 처음이라서 화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더니 얼굴이 붉게 물들어버린다. 세이의 귓등도 따라 화악 붉어진다. 친구사이이고, 일인 것뿐인데, 어째서 두근거리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준비 다 되었지? 내일은 훈련이랑 똑같다고 생각해. 포인트A까지 가서 타겟을 제거하고 포인트B로 귀환. 알겠나? 가이드들은 차량이랑 같이 시작점에서 대기. 너는 제외고.”

 

상관이 턱짓으로 이세이를 가리키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에는 여러 번 나갔기 때문에 세이에게 있어 별로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작은 일이긴 했지만 초보들이 많은 팀이기에 가이드가 하나 정도 있는 쪽이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분쟁구역으로 들어가서 폭발물 제거. 기초적인 일이었기에 세이는 마음을 놓았다. 상관이 해산을 외치자 작전실의 인원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세이는 일부러 화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손짓하곤 그곳에 남아 있다가 상관에게 다가갔다.

 

너냐? ?”

 

저 화랑 제대로 각인 맺을래요.”

 

?”

 

가이드가 생각보다 잘 맞는 것 같아요. 어차피 저, 능력도 못 쓰잖아요. 이제 위에서 포기할 때 쯤 되지 않았나요?”

 

이 새끼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안 그래도 그를 정식으로 가이드로 등재해도 괜찮지 않느냐는 회의가 이루어진 직후였다. 이세이가 어디서 그런 정보를 주워들었을 일은 없었지만 워낙 조용해서 평소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목을 가다듬고 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임무에서 돌아오면 각인을 허가하자는 말이 나왔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세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서 화와 손을 잡았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얼굴에 미소가 걸린 얼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관이 피식 웃었다.

 

저 새끼, 사람 다 됐네.”

 

 

 

각자 대기 위치로 이동!”

 

군용트럭이 멈춰 서자 그곳에서 사람 여섯이 일렬로 쏟아져 나왔다. 뜨거운 여름 해 아래서 포인트 A까지 이동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폐건물로 진입하자 모두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다들 제 감각에 의존해 계단을 오르며 폭발물을 찾아갔다. 세 번째 층에서 선두가 멈춰 서서 손짓을 하자 염력을 사용하는 이가 앞으로 나섰다. 커다란 화약고가 해체 되는 동안 맨 뒤에 선 세이가 손을 뻗어 제 앞의 화의 손을 꼭 쥐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까, 인이어 무전기에서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포인트 A, 타겟 제거 완료.”

 

딱딱하게 굳어있던 이들의 어깨가 풀어진다. 그대로 돌아서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해체 작업에 걸린 시간은 단 오 분정도. 의외로 빨리 끝난 작업에 투입반의 낯이 밝아진다. 그때,

삐익-삐익-삐익-

청력이 뛰어난 센티넬들이 다 같이 고개를 돌린다. 센티넬이자 가이드인 세이에게는 귀가 따가울 정도의 소리였지만, 당장 가이드와 함께가 아닌 센티넬들은 그 자리에서 제 머리를 감싸 안기 급급했다. 건물 안에서 들린 소리.

 

“6...?”

 

세이의 입에서 소리가 나오자마자 그의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함정. 그래, 이렇게 단시간에 끝날 리가 없었다. 아마 두 장치는 연결 되어있던 것이고, 위층에 있는 것은 센티넬들을 염두에 두고 감각을 교란하는 처리를 해둔 것이겠지.

 

함정이야! 도망쳐!”

 

누군가가 소리를 치자 우르르, 너나할 것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건물의 위치로부터 멀리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급박한 상황에 센티넬들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지, 그저 달리기만 했다.

콰앙-!

엄청난 굉음이 울리고 건물이 바로 눈앞에서 폭발한다. 그 소리와, , 불꽃의 형상 등의 반동으로 앞서 달리던 이들마저도 휘청거린다. 그 찰나의 순간, 탐색이라도 하듯 고개를 돌린 세이와 화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를 향해 손을 뻗어 잡은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는 서로를 지켜야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순식간에 방어막이라도 치듯, 주변의 돌덩이와 부서진 콘크리트들이 날아와 벽을 형성했다. 동시에 그 뒤로 두껍고 거대한, 물로 된 장벽이 생겨났다. 물을 뚫고 지나간 건물의 잔재들의 추락속도가 서서히 늦춰지더니 돌 벽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센티넬들도 합세하자 순식간에 건물의 붕괴가 진압되었다.

 

저렇게 거대한 물 장벽...”

 

세이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능력을 사용해버린 것이다. 그보다도 저렇게 깊은 물은... 손이 달달 떨리고 동공이 확장된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화가 잠시 벽에서 눈을 떼고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세이..., 찮으세요?”

 

화의 말조차도 귀에 쉬이 들어오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저 물이 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물은 저 멀리 있는데도 벌써 제 코와 입은 물속에 가라앉아 숨을 쉬지도 못하고 온몸을 거세게 버둥거렸다. 입을 벌려보지만 공기는 전혀 들어오지 못하고 입술 앞에서 정지해버리고 말았다. 기도가 막힌 사람처럼 목의 안쪽을 긁는 소리를 내며 헐떡거린다.

 

세이, 세이...!”

 

흐려지는 의식 속에 화의 다급한 표정이 비춰진다. 걱정하면 안 되는데. 어서 괜찮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하지만 세이의 입에서 어떤 종류의 음성이 나올 새도 없이 뚝, 그대로 의식을 놓아버렸다.

 

 

 

 

05

 

 

 

 

 

이세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꼬박 나흘이 지나서였다. 눈꺼풀을 파르르 떨더니 슬쩍 들어올렸다.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기엔 머리가 무거웠기에 얌전히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는 쪽을 택했다.

 

센티넬로 다시 투입되려나...’

 

머리가 더욱 지끈거렸다. 그렇게 되면, 화는? 화도 S급 센티넬이니, 상부에서 그에게 저를 귀속시키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새로운 가이드를 찾아주겠지. 새로운 가이드.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세이는 눈을 꽉 감았다. 그 누구에게도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귀한, 저만의 사람인데 감히 누구에게 넘긴다는 말인가. 화의 가이드는 저 자신이다. 유일하게. 세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인기척이 들려 다시 자는 척을 했다. 발소리로 추측컨대, 여자 둘. 한 명이 상태를 묻자 다른 한 명이 장치에 적혀있는 수치를 읽었다. 아마 나이가 꽤 있는 의사와 신입 간호사겠지. 간호사의 목소리에 맞춰 종이 위로 볼펜이 휘갈겨지는 소리가 난다.

 

참 딱하지. 이 환자도 아직 열여덟인데.”

 

안됐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나중에 평범하게 은퇴하길 바라야죠.”

 

평범하게 은퇴라니...아직 몰랐어?”

 

의사로 추정되는 이가 말을 하다 밀폐된 곳이라 새어나갈 일도 없는데도 목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말을 꺼냈다. 물론 그게 세이의 귀에 들어오지 않을 리 없었지만.

 

말이 은퇴지...여기서 안락사 시켜. 전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한 충격이 세이를 덮쳤다. 그들이 병실에서 나가기까지 최대한 심호흡을 하며 늘어난 심박수를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저 혼자 남게 되자 한 삼십분은 기다렸다가 벌떡 일어났다. 방금 정신이 든 듯 상체를 휘청이고 눈에 띄게 숨도 몰아쉬면서. 분명 병실에 보안카메라가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침대 옆에 있는 호출 벨을 누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평생을 국가를 위해 바친 대가가 안락사. 어째서 그동안 사용하기조차 싫었던 능력을 억지로 사용한 것일까. 화도, 저 자신도. 흔들리는 사고 속에서도 또렷한 결심이 떠올랐다.

 

 

 

화야,”

 

, ...”

 

퇴원 수속을 밟고 나오자마자 세이가 병원으로 걸어오던 화와 마주쳤다. 화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이 보이자 제가 하려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맨 것이 우선이었지만.

 

...울어? 화야?”

 

화가 저를 꼭 끌어안자 세이도 그를 마주 끌어안았다. 꼼질거리는 화의 손이 세이의 옷깃을 쥐었다. 절대로 놓지 않으려는 듯이.

 

......세이가..., 없어지시는 줄 알고...”

 

미안해. 놀라게 해서, 미안.”

 

화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고개를 세이의 품에 포옥 묻는다. 그가 쓰러졌을 때부터 계속 그를 잃는 꿈을 꿔왔기 때문일까. 어째서인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멈추지 않는다. 제일 먼저 어여쁘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조금은 자신을 원망하며 간신히 흔들리는 목소리를 다잡는다.

 

사과...하지 말아요... 세이가 깨어나서 기, 뻐요.”

 

. 그래도 쓰러진 게 다행일지도 몰라.”

 

고개를 살금, 떼어낸 화가 빼꼼히 시선을 올려 세이와 눈을 맞췄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화야, 우리 도망가자.”

 

“...네에?”

 

화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끔뻑거리는 두 눈이 그에게 고정 되었다. 도망? 이곳에서 사소한 규정조차 어겨본 적 없는데, 갑자기 도망이라니. 도망치면 즉석에서 사살 당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여태까지 한 번도 도망치려한 이도 없었고.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연금과 함께 풍족한 삶이 보장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도망치면 더 이상 능력을 쓰지 않아도 돼. 너도, 나도. 우린 동물원 속의 동물이 아니잖아. 사람답게 살자. 행복하게.”

 

그으... 아무리 그래도... .....당하면 어떡해요...?”

 

여기서 임무 중에 죽을 가능성이 더 높아. 그리고 은퇴해도...”

 

세이가 제가 들은 것을 화에게 속삭이자 그가 뻣뻣하게 굳었다. 덜컥 겁이 난다. 그래도, 여기에 남아 능력을 사용하고 싶진 않았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이 두려웠다. 능력을 너무 오래, 과도하게 사용하면 나타나는 폭주도 무서웠다. 거기다 안락사. 힘들고 아프기만 하다가 생을 마치고 싶지 않았다. 세이와 함께라면... 꿀꺽, 숨을 들이키곤 그를 마주했다.

 

, 갈래요. 세이랑...같이.”

 

 

 

 

여기는 팀 알파, 포인트 C로 이동완료.”

 

여기는 팀 브라보, 포인트 F로 이동완료.”

 

인이어 무전기에서 연달아 무전이 흐른다. 이것은 가이드 이세이로서의 마지막 작전투입이었다. 상관에게 한 달만 더 가이드를 하고 센티넬로 돌아가겠다고 사정을 해 간신히 승낙을 받아내었다. 단 둘이 한 팀에 속한 세이와 화가 언제나와 같이 손을 꾹, 맞잡았다. 작전 시작을 알리는 호출이 들리자 서둘러 이동을 시작했다. 신중하게,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연기를 시작한다. 삼십분이 지났을까, 화가 벽에 사람이 간신히 빠져 나갈 수 있을 크기의 작은 구멍을 내었다. 다른 층에서 폭탄을 들은 세이는 계산된 지점으로 그것을 옮긴다. 그곳에 그들의 무전기도 같이 내려두었지. 남은 시간을 재다가 삐익거리는 타이머의 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은 미리 만들어 둔 구멍사이로 빠져 나갔다. 그리고 정신없이 손을 잡고 뛰었다. 콰앙! 폭탄이 터지더니 그들의 뒤에서 건물이 붕괴한다. 저들이 향하는 쪽과 반대로 된 쪽으로 그 잔재가 쏟아져 내린다.

 

 

 

 

06

 

 

 

 

 

그곳에서 탈출을 끝내자마자 당일 오후에 그들은 비행기에 올랐다. 미리 가짜 신분증과 여권을 만들어둔 탓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에 걸쳐 다른 이름과 사진으로 이동한 그들은,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도착했다. 이제 억지로 능력을 쓰지 않아도 괜찮고, 폭주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 평생, 단 둘이서 사는 것이다. 새로 거주할 집의 정리가 끝나고 두 사람이 나란히 햇빛을 맞으며 침대에 누웠다. 잡은 두 손은 여전히 놓지 않은 채.

 

“...좋아해.”

 

문득 세이의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이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리다가 화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세이 좋아해요.”

 

화의 대답에 세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 이게 아닌데. 말을 한 것은 갑작스러웠지만 그것을 취소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니야. 나는 화가 친구 이상으로...좋아.”

 

귓등이 붉게 달아오른다. 눈을 꾹 감았다. 임무에 투입 될 때도 이렇게 긴장해 본적은 없었는데.

 

“...저도 세이가 그 이상으로 좋아요. 계속...계속 같이 있어주실 거,?”

 

세이가 눈을 번쩍 뜨고는 몸을 옆으로 굴려 맞잡은 손에 입을 맞췄다.

 

, 계속.”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