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7일에 마지막으로 편집
어두운 언덕 위의 하트 저택은 유령저택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일손을 구한다는 공고가 신문 한 귀퉁이에 실렸을 때 작게 소란이 일었으나 사람들은 금방 다른 화제를 찾아 나섰고, 이제서는 괴담의 소재로 언급되는 정도였다. 하트 저택에 관한 괴담은 어린아이들을 겁주는 데에 많이 쓰였다. 그 집의 주인이 미쳐 일가족을 다 죽였다느니, 죽은 지 100년이 지난 영혼들이 저들이 죽은 줄도 모르고 살고 있다느니, 온갖 이야기들이 저택을 배경으로 무성하게 꽃폈다. 하트 저택의 마지막으로 알려진 가주는 에블린 데브나 하트로, 18살 즈음의 붉은 머리칼과 애꾸눈을 지닌 여자아이였다. 그의 눈은 어렸을 때 사고로 다쳤다고들 하나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백 년도 지난 이야기였으니까, 더는 물어볼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블린은 작게 코웃음을 치며 신문을 덮었다. 곱슬곱슬한 붉은 머리와 녹색 눈, 한쪽 눈 위를 가로지르는 흉터와 주근깨. 하트 저택의 주인. 먼 후손 따위가 아닌, 그 본인이었다.
“벨라, 신문 치워둬.”
그 말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걸어 나왔다. 검은 머리와 푸른 눈 그리고 입가에 점 하나가 있는 그는 어쩌면 에블린보다 조금은 나이가 많아 보일지도 몰랐다. 벨라라고 불린 그의 이름은 이사벨라 카멜리아로, 하트 저택의 유일한 사용인이었다.
“더 필요한 건 없어, 이비?”
여자는 스스럼없이 제 주인을 그렇게 불렀다. 에블린 역시 그 애칭에 불편한 기색은커녕,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보이지 않는 신뢰와 유대가 있는 듯했다. 하나의 길고 긴 실로 이어진 듯한 그것은 너무도 단단해서 타인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금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해.”
그렇게 말하며 에블린은 이사벨라를 제 쪽으로 끌어왔다. 주근깨가 촘촘한 콧등이 이사벨라의 하얀 목덜미 위를 쓸었다. 둘은 일반적인 식사 메뉴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전날 무엇을 먹었다고 종알거리는 이사벨라의 이야기를 가만 듣던 에블린이 목덜미 위로 가볍게 입을 맞췄다. 마치 저는 함께 식사를 하지 않은 것 마냥. 그러다가 벌린 입 사이로는 뾰족한 송곳니가 샹들리에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하얀 피부를 문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트 저택의 주인은 여전히 에블린 하트였다. 백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덤불같이 무성한 소문들은 기반이 있었기에 자라날 수 있었다. 헛소리 사이에는 진실이 하나쯤은 숨겨져 있는 법이다. 저택은 단둘만의 거처였다. 그 거처 안에서도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유령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은 탄환으로 심장을 꿰뚫어야만 죽는 존재, 햇빛을 받을 수 없는 저주에 걸린 존재, 피를 마셔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 불로불사에 가까운 존재. 그것이 에블린을 수식하는 말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을, 말 그대로 유령저택 속에서 홀로 살아오던 그가 권속이 될 인간을 찾은 일은 그의 갖은 변덕 중 하나였다. 그는 많은 변덕을 부렸다. 카페트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니, 이번 먹잇감의 혈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니, 그 비위를 하나하나 맞추려면 그것도 상당한 노력이었다. 아직 인간이었을 적에 대체 몇 번이나 그 성미를 못 견디고 유모가 바뀌었던지. 시간이 흘러도 그의 성미는 여전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변덕에 맞춰 찾아온 이는 에블린의 변덕을 다 들어주었다. 오히려, 어쩌면, 그 변덕을 조금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심장이 뛰고, 햇빛을 쬘 수 있으며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존재. 누군가는 그를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사벨라 카멜리아는 평범한 인간이 맞았다. 조금 특이했을 뿐이다. 저택의 주인에 비할 바가 아니었을 뿐.
‘식사’를 마친 에블린은 마치 성대한 저녁 만찬이라도 마친 것처럼 하얀 냅킨으로 제 입가를 닦았다. 냅킨 위로 번지는 핏물은 아주 적어서, 고상한 식사예절을 지켜 깔끔히 접시를 비운 이의 흔적 같았다. 이사벨라의 얼굴은 이전보다 혈색을 잃고 희게 빛났으나 만약 피를 빨리지 않았더라면 볼에는 홍조가 깃든 채였을 테다. 선명한 이빨 자국 두 개가 난 자리에서는 어떠한 이유에선지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흡혈귀의 송곳니가 가진 특수한 이유 때문일 거라고 이사벨라는 추측했을 뿐이다. 덕분에 하얀 린넨 잠옷을 더럽히지 않아도 되었으니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오늘은 보름달이 밝아, 이비.”
자연스럽게 에블린에게서 물러난 이사벨라가 묵직한 벨벳 커튼을 걷으며 말했다. 거대한 창문 너머로 커다란 보름달이 비췄다. 보름달이 뜨는 날은 밤의 존재들이 강해지는 날이다. 그중 가장 사특한 것이 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녹색의 눈동자는 색이 선명해지며 어두운 그늘 밑에서도 형형하게 빛을 내는 것만 같았다. 그 눈동자가 이사벨라를 바라보았다.
“참 아름다운 밤이지.”
에블린은 이사벨라의 푸른 눈에서 그가 원하는 것이 있음을 읽어내었지만 모르는 척 다른 대답을 했다. 이사벨라의 눈에 옅은 원망이 서렸다. 그는 에블린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괜히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것 역시. 이사벨라가 칭얼거리듯 에블린의 이름을 부르자 그의 입술이 비스듬히 올라가며 오만한 호선을 그렸다.
“이비, 언제쯤 나를 동족으로 만들어 줄 거야?”
***
이사벨라가 처음 하트 저택에 도착했을 땐 남들의 말 대로 구인공고가 장난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덕 위의 유령저택이라 불리는 곳에는 제가 방문하자 맞이하는 이 하나 없었고,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오로지 작은 종소리만이 제 방문을 알렸다. 가구들 위로 쌓인 하얀 천들은 낮인데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유령 같았다. 마지막으로 쓸은 게 언제인지, 바닥은 먼지로 뽀얗게 덮여있었고 마룻바닥은 삐걱거렸다. 이사벨라가 그 적막 속에서 저택을 둘러보고 있을 무렵, 날카롭고 또렷한 여자의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올라와.”
지극히 당연한 명령조는 위층에서 올라왔다. 이사벨라는 더 많은 것을 묻고 싶었지만, 그것도 상대가 보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검은 단화가 붉은 융단을 깐 계단 위를 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2층은 캄캄했다. 긴 복도의 창문들은 모두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가 커튼을 살짝 걷으려고 손을 대는 순간, 아까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손대지 마.”
이사벨라는 저도 모르게 작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까는 분명히 없었다. 인기척조차 나지 않았는데 제 바로 옆에 사람이 서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붉은 머리의 여자는 그의 주위를 찬찬히 돌며 그 모습을 살폈다. 꼭, 먹잇감을 감상하는 짐승처럼.
“그게, 나는... 저는....”
“네가 이사벨라 카멜리아인가?”
이사벨라가 말을 고르는 사이에 에블린이 멋대로 말을 끊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예민했으며 신경질적이었다.
“...네, 맞아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사벨라가 자신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에블린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의 눈썹은 살짝 치켜 올라가 있어서 꼭 모든 것을 깔아보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사람임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그럼 오늘부터 네가 하트 저택의 유일한 메이드가 되겠군.”
에블린이 설명한 저택의 규칙은 간결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식사는 필요 없으니 그 역시 알아서 처리할 것. 위층에는 햇빛이 들지 않게 할 것. 자정이 지나면 방 밖으로 나오지 말 것. 허락 없인 절대로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오지 말 것. 그 외의 조건들을 물어보자 그는 알아서 하라는 답변을 남겼다. 보수는 후했다. 에블린은 일만 잘한다면 더 얹어주겠다고도 했다. 이사벨라에게 있어선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에블린을 귀찮게 하지 않고 바로 하녀 복으로 갈아입고 1층 바닥의 수북한 먼지를 쓸기 시작했다. 에블린도 더는 질문하지 않는 모습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이사벨라 카멜리아는 하트 저택의 생활에 금방 적응했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집 안을 청소하는 것은 혼자 끝내기엔 오래 걸릴 일이었으나 에블린은 일을 마칠 기한을 정해주지 않았으니 얼마든지 여유롭게 작업해도 괜찮았다. 넉넉한 급료로는 종종 근처 식료품점에서 구입한 괜찮은 식재료들로 맛있게 끼니를 때웠다. 하루가 지면 커다란 손님 방에서 잠이 들었다. 어차피 둘밖에 없는 저택인데 좁은 사용인 숙소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에블린의 말 덕분이었다. 그런 삶이 지속될수록 이사벨라의 의문들은 점점 쌓여만 갔지만, 그는 질문을 싫어하는 듯한 에블린의 태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일부러 그를 귀찮게 할 정도로 중요한 일도 아니었으니 그는 의문에 신경을 끄기로 마음먹었다. 그 날 밤 전까진.
한밤중이었다. 복도에서 나는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이사벨라의 잠을 깨웠다. 그는 소리의 출처가 궁금했지만, 저택의 규칙을 잊지 않았고, 굳이 방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치는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벨라는 그 위치가 에블린이 밤마다 지내는 집무실의 방향임을 기억했다. 규칙과 걱정 사이에서 서성거리던 그는 결국 문을 열었다. 흰 발이 소리 없이 붉은 카펫 위를 걸었다. 등잔 하나에 의지한 이사벨라는 집무실로 걸음을 급히 옮겼다. 가까이 갈수록 남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화를 내었다가, 비는 듯했다가, 우는 듯했다가, 협박하는 듯했다. 에블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남성의 비명이 저택을 가득 채웠다. 이사벨라의 걸음도 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집무실 앞에 도착했을 무렵, 마지막 남은 이성이 그를 멈춰 세웠다. 허락 없인 절대로 집무실에 들어오지 말 것. 이사벨라는 허락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 들어가서도 안 됐다. 하지만 제 주인이 위험에 처해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에블린이 안전하다면 조용히 제 방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아니라면 당장 문을 벌컥 열면 될 것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열쇠 구멍으로 문 너머를 보았다.
열쇠 구멍 너머로는 집무실의 책상이 바로 보였다. 그 위에 걸터앉은 것은 에블린이었다. 그는 붉은 액체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에블린의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에블린은 낯선 남성의 목에 송곳니를 박고 있었으니까.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이사벨라가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촛농이 떨어지고 에블린과 시선이 마주쳤다.
“들어와.”
이사벨라가 얼어붙어 있는 동안 나른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어쩐지 이사벨라는 그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달달 떨리는 손이 문고리를 돌렸고, 처참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게 자정 이후로 방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잖니.”
에블린이 턱을 쓸었다. 이사벨라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기도 했고, 그의 반응을 기다리는 중이기도 했다.
“전... 아무것도 못 본...”
“하지만 봤잖아.”
이사벨라는 굳어버린 머리로 열심히 생각을 쥐어 짜냈다. 살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었다. 지금의 에블린은 꼭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독 안에 든 쥐였다. 까딱하면 바닥에 널브러진 저 남자처럼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 을게요.”
“당연한 소리를.”
“절, 드실 건가요?”
에블린이 높은 웃음을 터뜨렸다. 떨고 있는 이사벨라를 재밌어하는 눈치였다.
“하트 저택의 유일한 메이드를 먹어버리면 문제가 되겠지. 갈아입을 옷과 물을 가져와. 이 난장판도 좀 치우고.”
에블린은 이사벨라를 먹지 않았다. 그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때부터 이사벨라는 에블린의 진정한 메이드가 되었다. 규칙도 많이 바뀌었다. 가령 자정 이후에도 부르면 와야 한다거나, 집무실을 치우러 들어와도 된다거나. 이사벨라는 이 모든 일을 둘만의 비밀같이 느꼈다. 저와 에블린을 제외하면 세상의 그 누구도 이 저택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다. 그리고 에블린은 자신을, 자신만은 특별하게 대했다. 그건 또 다른 감정을 일으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사이에 다른 사람을 끼우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에블린이 사냥을 나가는 것도 원치 않았다. 온전한 둘만의 비밀로 남기고 싶었다. 시체조차 모르도록.
“왜 저는 드시지 않으세요?”
에블린이 눈썹을 치켜떴다.
“언제는 먹을까 봐 걱정하더니.”
이사벨라는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고, 에블린은 작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네 피를 먹어주길 바라?”
이사벨라는 대답 대신 검은 머리를 젖혀 하얀 목덜미를 드러냈다.
“죽이지만 않는다면요.”
에블린의 시선이 그 위로 머물렀다. 고민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에 비해 이사벨라의 눈은 결연했다.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아플지도 몰라.”
“괜찮아요.”
“...네 피는 항상 향이 좋았지.”
얼마간의 정적 끝에 이사벨라는 목덜미에 통증을 느꼈으나 이는 잠시뿐이었다. 에블린은 온순한 맹수처럼 피를 마셨다. 그건 정확히 이사벨라가 바라던 모습이었다. 에블린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온순하게 굴지 않았으니까. 마침내 에블린이 몸을 거두었을 때, 그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벨라.”
이사벨라는 내내 부르고 싶던 이름으로 그에게 화답했다.
“응, 이비.”
***
다시 그 보름달 앞에서 에블린은 웃었다.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후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제게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간인 그에게는 상당히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둘의 관계는 여전히 주인과 메이드였으나 이전과는 달랐다. 그 사이에 애정과 신뢰, 미래와 운명이 섞여 들어갔으니까. 그리고 이사벨라는 제 동족이 되고 싶어 했다. 그간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한 것은 에블린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으나 요는 후회할 거란 소리였다. 그러나 에블린의 변덕은 한결같았고, 보름달이 뜬 오늘이라면 제 평생의 동반자를 만들기에 나쁘지 않은 날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벨라, 정말로 나와 평생을 함께할 준비가 됐어?”
“난 항상 준비가 되어있었어, 이비.”
이사벨라의 눈이 기대로 반짝였다.
“그럼 맹세해. 영원히 내 곁을 지키겠다고.”
“맹세할게. 나는 평생 네 곁에서 함께 할 거야.”
에블린이 이사벨라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다가 그 위로 입을 맞췄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살갗을 꿰뚫었다. 평소와 다르게 뜨거운 느낌이 밀려 들어왔다. 에블린은 독을 주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었다. 이사벨라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느낀 감각은 갈증이었다. 목이 탔다. 끝이 없는 목마름으로 허기가 졌다.
“새로 태어난 소감은 어때, 벨라?”
“목이 말라, 이비.”
그 말을 들은 에블린은 와인 잔을 꺼냈다. 그리곤 서랍에서 와인 병을 꺼내 잔에 채웠다. 이사벨라가 인간이었다면 그대로 건네줬겠으나,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이제 유령저택에는 인간이 아닌 것들만 둘이었다. 에블린은 자신의 손목을 물어 와인에 제 피를 섞었다. 그리고 잔을 들어 직접 이사벨라의 입술에 대고 기울여주었다.
“갈증이 좀 가실 거야.”
이사벨라는 급하게 붉고 질척한 액체를 비웠다. 그 맛은 살아생전 마셔본 그 어떤 와인보다도 풍미가 깊고 달았다. 이사벨라의 푸른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에블린은 꼭 갓 태어난 새끼 짐승을 보는 듯했다. 위태롭고, 또 사랑스러운. 그의 눈이 휘었다.
“이제 내 피는 네 것이야. 영원히.”
다른 인간의 피는 먹게 하지 않아. 에블린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 안에 담긴 독점욕을 이사벨라는 읽을 수 있었다. 이사벨라도 웃음을 지었다. 이것이 그들이 진정 원하던 영원한 미래였다. 그들은 다시 와인 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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