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9일에 마지막으로 편집
틸이 추첨식 날 자원을 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그의 가족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틸은 언질조차 주지 않았다. 그가 열여덟이 될 때까지 설득할 시간이 있을 거라 여겼기에 열여섯의 틸이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리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캐피톨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고 나자 누군가의 한숨 같은 소리가 뒤따랐다.
"언젠가는 무슨 일을 낼 줄 알았지만요..."
The Green Eyed Monster
Teal Liu
걷는 것보다 헤엄을 먼저 배우는 아이들은 4구역에 흔했다. 틸 리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는 찰박거리며 물장구를 치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있었다. 틸은 저녁 늦도록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도 꿈쩍도 안 했다. 물속에 있으면 제 다리를 땅에 묶어두는 제약이 사라졌다. 언제까지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다는 광활했다. 방해물이 아무것도 없는 시야에는 탁 트인 하늘과 수평선만이 자리했다. 이따금 배를 타고 나간 가족을 기다리며 부둣가에 앉은 그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의 시선은 수평선에서 떠날 줄은 몰랐다.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틸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의문이 자리했다.
수영만 하던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저곳에 보내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가 아홉 살이었을 때이다. 틸의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그 해의 헝거게임이 재생되던 스크린. 안된다고 어르고 달래도 틸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해내야지 직성이 풀리는 아이. 매사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한 아이.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 틸은 천성적으로 그랬다. 결국은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틸은 프로조공인 훈련을 받게 되었다. 훈련을 시작한 첫날엔 집에 돌아와서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느라 정신없이 폴짝거렸다.
'드디어 첫걸음을 내디뎠어!'
그것이 수평선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의 시작이었다.
아무렴, 그곳에 닿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뱃사람에게 바다란 속을 알 수 없는 존재이다. 잘 알 것만도 같다가, 어느 날이면 거친 파도에 모든 것이 휩쓸려가 버린다. 잔잔한 날에는 끝없는 평화가 지숙될 것 같지만 한 번 폭풍우가 몰려오면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태어난 아이는 바다의 심장은 절대 엿볼 수 없다는 걸 배웠다. 그것은 깊은 물결에 쌓여있었다. 저 해조류와 거품 사이에 단단히도 숨어있다.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는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 불투명한 피부조직과 단단한 뼈와 근육 속에 무슨 상념이 자리할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상대를 반으로 쪼개어 본다 한들, 우리는 영영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틸의 사고방식이었다.
물론 그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던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는 어른이 남긴 말이 깊숙이 스며들 때가 있다. 틸에게는 교관의 가르침이 그랬다. 수평선 너머를 보고 온 사람! 그곳에 발을 디딘 사람! 영광이니 명예니,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저 사람을 따르면 수평선에 가까워진다. 어쩌면 저 역시도 살아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넌 왜 나를 믿니?"
"선생님이니깐요!"
"너, 내 말을 조금도 이해 못 했구나."
교관은 한숨을 쉬었다. 이게 아닌가? 틸은 제가 무슨 실수를 했나 싶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니?"
"답답하다...?"
"무슨 근거로."
틸의 말문이 막힌다. 그는 황급히 머리를 쥐어짜며 그럴싸한 설명을 붙인다.
"한숨을 쉬었고.. 또...!"
"아닌데."
눈동자가 떨린다. 그럼 뭐지? 마땅한 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안 그래도 혼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만큼은 싫었다. 게다가 또 선생님은 제게 얼마나 실망하실지. 결국은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작게 더듬거렸다.
"그... 그러면요?"
"널 불안하게 만들려고 그랬어. 어떻게든 실수를 만회하려고 허둥거리는 널 보려고."
그러자 틸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깟 예시를 들자고 나를 가지고 놀아?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데!'
"화가 나니?"
"...네."
"그것도 네가 미숙하다는 증거란다. 네가 나를 믿어서 화가 나는 거야. 선생님이라면 나를 상처입히지 않았을 텐데, 같은 믿음. 그리고 내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만큼, 선생님도 날 좋아할 거라는 믿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울먹이는 바람에 틸의 목소리가 떨린다. 정말로 그를 신뢰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감정이 북받쳤다. 선생님은 나만큼 나를 안 좋아한다는 거잖아. 배신감이 밀려들었다.
"아무도 믿지 마. 네 멋대로 기대를 하니 상처를 받는 거야. 사람은 보이는 대로 생각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이제부턴 마음의 문을 꼭꼭 닫는 연습을 할 거야.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괜찮아. 헝거게임에 나가지 마. 네 부모님도 그러길 바라신단다. 하지만 그래도 나갈거면 해야 돼. 나는 네가 개죽음을 당하게 둘 순 없어."
교관이 틸의 손에 쥐여준 것은 단도였다.
"틸, 내 눈을 바라보렴. 이대로 날 찌를 수 있어야 해."
글썽거리는 초록색 눈동자가 빤히 바라본다. 하지만 그만둘 순 없어. 틸에게 그건 선택지가 아니었다. 수평선 너머를 봐야 했으니까. 직접! 작은 머리가 끄덕였다.
"힘이 들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렴. 미워하는 것도 힘들다면 질투를 하렴. 나보다 힘이 세다니, 나보다 나이가 많다니, 나보다 잘났다니, 하고."
"알... 겠... 어요."
한 번 마음을 닫을 수 있게 되자 잘라내기는 더욱 쉬워졌다. 그게 사람이든, 관계든, 물건이든. 이제 틸은 사람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너는 그런 사람이야. 네가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진 아무도 몰라. 나에 대해서도 네 멋대로 생각해.
관계라는 것은 아예 믿질 않았다. 그 순간은 거짓이 아니었다. 타인과 웃고, 떠들고, 걱정하던 것들은. 그러나 신뢰를 기반하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점점 남을 질투하기 시작했다. 부러워. 내 목숨을 앗아가려 하는 너희들이 부러워. 나를 앞지른 네가 부러워. 착해빠진 네가 부러워. 그리하여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초록 눈의 괴물이 태어난 것이다.
제 78회 헝거게임 3주 전,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던 틸은 꼭 무언가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틸. 틸.
이리 오라고, 수평선 너머로 오라고 손짓하며. 그러자 문득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꼭 신기루 같았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환상. 틸은 지금이 아니면 영영 그곳에 닿지 못할 것 같았다. 평생을 궁금해 왔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런 삶을 사는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는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틸은 아니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해내야지 직성이 풀리는 아이. 매사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한 아이.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 그런 아이였으니까.
그날부터 틸은 모든 것과 작별하기 시작했다. 사람과도, 물건과도. 사귀고 있던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가족과 친구들과도 속으로 인사를 끝마쳤다. 이제 영영 보지 않을 존재였다. 설령 제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었다. 틸은 시간을 잘라내었다. 앞으로 그들은 죽은 존재였으며, 유령과 다름없었다. 그들과의 시간은 그 자리에 정지한 것이다. 영원히. 그러니 누굴 그리워하고, 누굴 보고 싶어 하겠는가. 없는 것을 그려봤자 시간 낭비인데.
물건도 마찬가지였다. 모래 한 줌이 고향을 그립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물건과도 작별하기 시작했다. 아끼던 조개껍질들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바다에 뿌려줬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인형은 마당에 묻어뒀다. 일기장은 태웠으며, 모든 소지품은 차곡차곡 정리했다. 꼭 누군가의 유품을 정리하듯이. 헝거게임의 추첨식 다음 날, 틸의 방에 들어간 리우 부부가 그 방의 모습을 보고 그가 충동적으로 저지른 짓이 아님을 알 수 있도록. 틸이 들고 온 것은 주머니 속에 든 작은 소라껍데기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과도 작별했다.
"안녕, 안녕."
그 누구도 믿지 않았지만, 수평선 너머에 다다른 틸은 분명 즐겁게 지냈다. 다른 구역에 대해 전해 듣고, 새로운 것들을 마주했다. 그 모든 것을 직접 본 것은 아니니 반쪽짜리 광경이나 다름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틸은 기뻐했다. 그리고 아레나에 올라서기 직전, 그는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과 작별을 했다. 이제 그들은 다 그곳에서 죽은 것들이다. 다 허상이고 망령이다. 아파하지 않으면서 그 눈을 똑바로 보고 찌를 수 있었다.
제게 남은 것은 자신 하나뿐이었다. 틸은 자신이 우승할 거란 기대는 품지 않았지만, 정말이지 살고 싶었다. 단 하나만의 욕망을 품으며, 문은 여전히 굳게 잠근 채로.
폭풍우 치는 바다 속에서 초록색 눈동자가 또 다시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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