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합시다 - 수사풍사
“형, 여기야, 여기!”
사청현이 팔을 흔드는 것을 본 사무도가 한마디를 하려다가 못 이기는 척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간만의 하계 사찰이었다. 사청현이 들뜬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사무도는 이를 눈감아주기로 했다. 마을에선 장이 섰는지 노점상과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다양한 물건과 음식들로 가득했다. 그것들에 시선을 뺏겨 이리저리 둘러보던 사청현이 멈춰선 곳은 척 봐도 잘 나가는 만둣집 앞이었다. 부엌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하얀 김이 풀풀 났고 식당엔 사람이 많았지만 시끄럽진 않았다. 찐 음식이라 그런지 코를 사로잡는 향은 없었지만, 저 멀리 찜통에 담겨 있는 만두 위로 흐르는 윤기를 외면하긴 어려웠다. 사청현이 그걸 빤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사무도의 늘 오만하기만 한 표정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들어갈까.”
“응!”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자 제일 먼저 나온 것은 하가우였다. 겉이 하얗고 얇아 주홍빛 속이 반투명하게 비치는 반달 모양새의 만두가 한 판. 두 사람은 젓가락을 집었다.
“입이 데이지 않게 조심하거라.”
“형은,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사청현이 하가우를 후후 불고선 간장을 살짝 찍어 한입에 넣었다. 입속에서 쫀득한 만두피가 찢어지자 뜨끈한 속이 혀에 닿았다. 탱글한 새우살이 터지듯 씹혔고 약간의 후추 향이 맴돌았다. 여기에 간장의 짭짤함까지 더해지자 맛의 조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맛있어!”
“흠. 상천정의 음식만은 못하지만 나쁘지는 않군.”
기본 중의 기본이자 어느 만둣집에나 있는 하가우는 그 식당의 간판이나 다름없었다. 사람이 많아도 관리는 잘 되는 건지, 만두피가 너무 질지도 건조하지도 않아 딱 좋은 쫄깃함을 자랑했다.
“다음 판 내어드리겠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다음 찜통에는 샤오마이가 담겨 있었다. 노란색 피로 감싼 만두는 위가 완전히 닫히지 않아 속이 조금 보였고 그 위로는 주홍색 어란을 살짝 뿌린 채였다. 사무도가 샤오마이를 입에 넣고 씹자 부드럽고 고소한 돼지고기의 육즙과 다진 통통한 새우의 감칠맛이 한데 섞였다. 씹을 때 입안에서 작게 톡톡 터지는 알갱이는 아마도 푹 익은 어란일 것이다. 여기에 간장이 적절히 간을 해주고 생강의 알싸한 향이 입맛을 돋우었다. 사무도가 천천히 맛을 음미하자 그를 보는 사청현의 눈이 빛났다.
“어때?”
“잡내도 나지 않고 풍미를 잘 살린 것이,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사청현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형을 바라보는 동안 사무도는 따뜻한 차로 입가심을 했다. 기름진 입안을 향긋한 찻물이 씻어내려 주었다. 완벽한 오후였다.
“이번엔 또 무얼 먹고 싶느냐, 청현.”
두 사람 모두 가벼이 끼니를 때우고 싶었던 터라 식사는 주문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둘 다 그 만둣집에서 국수를 먹고 있었을 것이다. 사청현은 걸음을 옮기며 늘어선 가판들을 둘러보았다.
“뭔가 달달하면서 시원한 거 없으려나...”
가판 위의 알록달록한 사탕들과 적당히 기름진 과자들을 지나던 중에 미미하게 달큰하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설탕을 탄 데운 우유의 향이었다.
“행인두부인가.”
사무도가 흘끗 한 노점을 보며 중얼거리자 사청현이 옆에서 고개를 쭉 내밀었다.
“방금 따뜻한 걸 먹었으니 시원하면 좋을 텐데... 앗!”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사청현이 사무도를 빤히 바라봤다.
“무엇이냐.”
“수사대인...”
어쩐 일로 동생이 대인이라는 호칭까지 갖춰 깍듯이 부르자 사무도의 눈에는 얼핏 설마, 하는 기색이 스쳤다. 그것이 진짜라는 듯이 사청현이 장난스레 웃음 지었다.
“냉수로 식혀주면 안 될까?”
“사청현! 어찌 법력을 사사로이 쓰려 하느냐!”
“농담이야, 농담!”
하지만 결국 사청현은 사무도에게 한참 동안 잔소리를 듣고서야 풀려나게 되었다.
“행인두부 두 개 주세요...”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로 사청현이 주문하자 젊은 상인이 친절하게 물었다.
“따뜻한 것으로 드릴까요, 식힌 것으로 드릴까요?”
“식힌 게 있어요?”
사청현의 눈이 동그래진 것을 본 상인이 미소를 지었다.
“날이 더워져서 찾으시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괜히 형한테 농담했네...”
처음부터 물어볼걸, 사청현이 잠시 불쌍한 얼굴을 했지만 금방 음식을 들고 제 형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여기. 식힌 게 있었대.”
시원한 설탕물에 담긴 행인두부는 우유가 들어가 그런지 뽀얀 빛을 내었다. 사청현이 작은 수저로 탱탱한 표면을 푹 뜨자 그 모양대로 행인두부가 움푹 패였다.
“옛날엔 행인두부라고 해서 정말 콩으로 만든 두부인 줄 알았는데.”
“살구씨로 만들었지만, 생긴 게 두부를 닮았으니 말이다.”
사청현이 행인두부를 먹는 모습을 보며 사무도가 대꾸했다. 사청현의 입안에 들어간 행인두부는 한천을 넣어 만들어 묵처럼 말캉하게 씹혔다. 시원한 설탕물에 고소한 우유의 맛과 달큰한 체리향 같은 것이 뒤섞여 입안에 사르르 퍼졌다. 그다지 씹을 거리도 없어 입에 넣고 두어 번 오물거리면 금새 사라져버렸다.
“그리 좋더냐.”
사청현의 즐거운 표정을 본 사무도는 내심 뿌듯해졌다. 역시 같이 나오길 잘했다. 발걸음이 무거운 수사 대인을 하계까지 내려오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사청현이 유일하리라. 흐뭇하게 그릇을 비우는 사청현을 보던 사무도도 수저를 쥔 자신의 손을 움직였다. 은은한 단맛은 부드럽게 그의 혀에 감겼다. 따뜻하게는 자주 먹어봤지만 차갑게 먹는 것은 또 처음인지라 기분 좋은 신선함이었다.
“다 먹었으면 이제 그만...”
“어! 탕후루다!”
사무도의 말을 듣지도 못한 것인지 탕후루 장수를 본 사청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 모습에 지끈대는 머리를 짚은 사무도는 언제 사라졌냐는 듯 금방 돌아온 제 아우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라도 하고 사라져라, 청현.”
“에이, 금방 다녀왔잖아.”
그리고는 짜잔~ 이라는 말과 함께 사청현은 탕후루 하나를 내밀어 보였다. 산사나무 열매에 끓인 설탕물을 입혀 식힌 탕후루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래도 옛날 생각나지 않아?”
사청현의 말대로였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에는 이 과일 꼬치를 하나씩 물고 군것질을 하곤 했으니까. 잠시 옛 추억을 회상하던 것을 알아챘는지, 사청현이 생긋 미소를 지었다.
“형, 아 해봐.”
“나는 되었다.”
“딱 한 입만! 응?”
하지만 두 사람의 티격태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무도가 어찌 애원하는 사청현에게 이길 수 있겠는가. 자신이 먹기엔 너무 달다고 툴툴대면서도 사무도는 사청현이 내민 열매를 한 입 맛볼 수밖에 없었다. 겉을 둘러싼 단단한 설탕 막이 파사삭 부서지자 그 속의 산사 열매의 맛이 느껴졌다. 시큼하고 떫은맛이 맴돌기 전에 부서진 설탕 막이 입안에서 녹으며 그 맛을 달콤하게 감싸주었다. 달콤하고 시큼한 맛은 제법 잘 어울렸다. 너무 많이 먹는다면 머리가 핑 돌지도 모르겠지만 제 형과 달리 사청현은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와작와작 씹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귀여워 사무도는 남몰래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먹으면서 걷도록 하자꾸나.”
“돌아가는 길에 입이 심심할 일은 없겠다.”
“방자하게 돌아다니다가 입천장이 까지지 않게 조심하거라.”
“어린애 취급하지 말래도!”
사청현이 항의했지만 금방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혀끝에 느껴지는 새콤달콤함에 저도 모르게 걸음걸음마다 들뜨는 건 어쩔 수 없었으니까. 오늘의 인간계는 평화로웠고 상천정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쉽지 않았다.
“형, 여기 봐.”
“음?”
상천정으로 돌아간 사무도는 사청현의 부름의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확인할 틈도 없이 무언가가 그의 입으로 쏙 들어갔다. 그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새콤한 종잇장 같은 것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이게 무슨...”
“산사병이야. 아까 탕후루 사면서 같이 사 왔어.”
산사 열매로 만든 얇은 전병. 사청현은 분홍빛의 전병이 담긴 통을 슥 내밀었다.
“피곤할 때 먹으라고.”
사무도가 얼떨결에 통을 받아들었다. 조금은 얼빠진 채로 그걸 가만히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돌았다.
“정말 네게는 못 당하겠구나.”
“그렇지?”
상천정에서 들려오는 두 형제의 웃음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화목했다. 천관이 복을 내리시니 근심할 것 하나 없었다. 아직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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